책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그림이 함께 나오는 동화책 두 권입니다.


이 책을 쓴 사람은 미국 사람입니다.


자기네 나라 말로 썼을 테니까, 영어로 된 책이 겠지요.


영어 이야기가 나왔으니까, 영어 이야기를 조금만 하겠습니다.


곧 바뀌게 되겠지만, 현재 나의 직업은 어린이 영어 강사입니다.


아, 중학생들에겐 문법도 가르치고 학교 시험 대비 수업도 합니다.


아마 나만큼 영어에 대한 회한과 애증, 컴플렉스 같은 것이 큰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나는 어쩌다보니 죽어도 가고 싶지 않았던 학교를 가게 되었고,


결국은 그 곳의 영문학과를 졸업하게 되었습니다.


영어전공과목이 너무 싫었던 나는 D-를 받아도 재수강을 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영문과를 나왔다는 걸 알게되면 사람들은 모두 나에게


'그럼 영어 잘하시겠네요.' 라고 했습니다.


그 때 나는 영문과를 나왔다는 사실이 영원한 형벌처럼 나를 따라다니며


괴롭힐 거라는 걸 알았습니다. 나는 도망치고 싶었습니다.


그 괴로운 영어와 관계된 인생을 살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내가 좋아하는 일이었던 글쓰기나 영화 만들기같은 걸 하면서 돈을 벌기는 너무 어려웠습니다.


뭔가 조금은 다른 삶을 살고자 애썼던 많은 평범한 사람들이 그렇듯


나는 학원 강사가 되었습니다.


이왕 하는 거, 나는 내가 하는 일을 사랑하고자 했습니다.


아이들을 사랑하는 일은 어렵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사람이니까요.


나는 사람과 쉽게 사랑에 빠지는 사람이었으니까요.


그러나 내가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했던 영어를 사랑하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먹고 살아야했기에 울면서 그 일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일하던 학원에 영어 도서관이 생겼습니다.


그 곳은 곧 색색깔의 아름다운 그림이 그려진 동화책으로 가득찼습니다.


그 곳에서 나는 그 유명한 앤써니 브라운을 처음 만났습니다.


앨런 세이와 윌리엄 스테이그, 로버트 맥클로스키도 만났습니다.


물론 학교 다닐때에 나는 스캇 핏츠 제랄드나 제임스 조이스, 버지니아 울프를 만난 적이 있습니다.


나는 그들의 작품을 사랑했습니다.


그러나 내가 그들의 작품이 쓰여진 언어였던 영어를 사랑하기에는


그 책을 읽으면서 찾아봐야했던 영어 단어와 이해되지 않는 문장 구조가 더 많았습니다.


게으르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성격이었던 나는


그 높은 문장 구조의 산맥과 그 안에 빽빽하게 심어진 단어라는 나무 숲을 통과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영원히 그 영롱한 숲의 아름다움을 발견하지 못하고


나에게 스트레스만 안겨주었던 그 언어를 증오했습니다.



그러다가 서른 세살이 되었을 때, 바로 그 도서관에서,


나는 그 영어라는 말의 성찬을 받았습니다.


처음으로 윌리엄 스테이그의 <아모스 엔 보리스>를 펴들었던 날이 생각납니다.


책을 받치고 있던 내 두 손바닥 위로,


금빛 반짝이가 섞인 눈부신 언어가 물결처럼 찰랑대며 쏟아져 내렸습니다.


나는 마치 처음으로 물을 만져본 헬렌 켈러처럼,


'아! 이 것이 언어라는 것이로구나.

 영어는 죄가 없었어.

 영어를 미워하게 만든 건 나였어.

 나한테 영어를 억지로 공부하게 만든 어른들이었어.

 영어는 원래부터 그 자리에 이렇게 빛나는 모습으로 있었어.

 영어는 죄가 없었어. 아아.'


내게는 영어를 모국어로 쓰는 나라의 초등학교 2학년이나 3학년들이 읽을 수 있을만한

어휘로 쓰여진 동화책이 딱이었습니다. 4학년용 책부터는 그림이 거의 사라져서 재미가 없었고

1년학년용 책은 글자가 너무 적었습니다.


글자와 그림이 적당히 아름다운 배합을 이룬 그 2~3학년용 책들은 놀라웠습니다.

그 책들은 순수했고, 자연 친화적이었으며, 어른인 우리는 감히 제기하지 못하는 용감한 질문들

(예를 들면 바람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냐요 같은)로 가득했습니다.


때로 나는 영원히 그 초등학교 2~3학년의 어휘에 머무르고  싶었습니다.

거기에는 살아가는 데 중요한 모든 어휘, 모든 질문이 다 있었습니다.

그 이상의 어휘로 이루어진 어른들의 세계를 나는 알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건 내 모국어로 알고 있는 세계만으로도 충분하다 싶었습니다.











이제 베라 비 윌리암스를 소개합니다.


그녀가 바로 내가 이 글을 쓰는 이유입니다.


나는 내 사랑하는 친구들이 그녀의 책을 읽어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책 제목입니다.








확 땡기죠?








마이 마덜 입니다.







이렇게 시작합니다.


겁먹지 말고 읽어보세요.




조금 더 보여드리겠습니다.






아름답지요?

몇번이나 읽었지만 나는 살짝 눈물이 나려고 합니다.



여기까지만 보여드리려 합니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페이지는 아껴두겠습니다.




언젠가 영풍문고에서 이 책을 샀던 기억이 있습니다.

아마 도서관에도 찾아보면 있을 것입니다.

번역된 책을 구하기도 어렵지 않을 거예요.


그러나 여건이 허락한다면, 원문으로 된 책을 구해서 읽어보길 권합니다.


저 장밋빛 의자처럼 포근하게 안겨오는 말의 뉘앙스를 느껴보시길 바랍니다.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 떠오른 사람이 있었습니다.

함께 영화를 공부했던 친구였습니다.

언제나 엄마가 나오는 시나리오를 써오곤 했던 친구였지요.


난 그 녀석에게 이 책을 선물했습니다.


'이거 니 책이야.'

'너와 같은 1982년에 세상에 나왔어.'


하며 말이지요.


녀석이 저 책을 읽었는지 어쨌는지는 모릅니다.

아마 안 읽었을 확률이 더 큽니다.


무슨무슨무슨 이유로 우리는 더 이상 연락을 하지 않는 사이가 되었는데

그래서 아마 저 책은 녀석에게 처치 곤란이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저 책의 어휘와 문장이 녀석이 읽기엔 너무 어려운 수준인지도 모릅니다 헤-


그랬거나 어쨌거나 그래도 저 책은 녀석의 책입니다.











<체리와 체리씨>를 소개합니다.








그림도 모두 베라 비 윌리암스가 그렸습니다.







아버지에게 헌정한 이 책은

앞에서 소개한 엄마에 대한 책보다 4년 늦은 1986년에 나왔습니다.

이로써 베라 비.의 바로 이 비가 베이커의 약자임을 알 수 있구요,

베라 비 윌리암스가 결혼을 한 사람이었다는 걸 알게 됩니다.









글자를 좀 더 가까이 보여드리겠습니다.


읽다보면 유년에서 날아온 어떤 향이 코끝에 스칠 겁니다.
















이 친구가  Bidemmi 입니다.

말하고 있는 '나'의 윗집에 살구요,

내가 새로 생긴 싸인펜이 생길때마다 가지고 가면

그걸로 그림을 그립니다.



그녀가 찍은 점 하나, 그녀가 그은 선 하나는

곧 가방이 되고, 사람이 되고, 이야기가 됩니다.

이야기는 꼬리에 꼬리를 뭅니다. 숨쉴 틈이 없습니다.

그걸 듣고 있는 독자인 '나'는 그만 무아지경에 빠집니다. 넋을 잃습니다.



난 어쩌면 그녀가 이 책을 단숨에 썼을지도 모른다고 느낍니다.

왜냐하면 읽던 내가 도저히 멈출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 이야기는 특별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 주변에 사는 평범한 사람들이 체리를 먹는 이야기입니다.

사랑하는 가족들, 친구들에게 체리를 선물하는 이야기입니다.


가장 평범한 이야기를 무척 인상깊게 써내는 것을 재능이라 부를 수 있다면

베라 비 윌리암스는 올해 내가 만난 가장 재능있는 작가입니다.














저는 예쁜 것을 좋아라 합니다.

곧 죽어도 예뻐야 한다고 믿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살아 있는 매 순간, 내 평생 가장 예쁜 모습이고 싶은데요,

(다른 사람들과 비교해서 예쁜 것 말고요. 그런 것은 가능하지 않기도 하고 또 재미도 없으니까요.)


특히 예쁜 할머니들을 보면, 좋아서 어쩔 줄을 몰라합니다.


그래서 위 그림의 저 할머니는,

제게 있어 이 책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인물이 되었습니다.



<체리와 체리씨>도 여기까지만 보여드릴께요.



베라 비 윌리암스는, 참 신기한 작가입니다.

딱 두권밖에 못 읽어보았지만

그녀의 책은 제게

제가 아는 살아있는 사람들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이 책을 읽고 있던 순간도 누군가가 떠올랐습니다.

난 그녀라면, 이 책을 읽는 내내 내가 맡았던

우리의 유년에서 건너온 오래된 싸인펜 냄새를

맡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느꼈습니다.


그녀 역시 Bidemmi 처럼,

그림을 그리고 이야기를 해야만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인지도 모릅니다.


언젠가 그녀가 내게 보내준,

그녀가 지금 쓰고 있는 이야기는,

그 이야기를 통해서 그녀가 세상과 나누고 싶어하는 것은,

이 동화책에 나오는 Bidemmi가 자기집 마당 한쪽 구석에

체리 씨앗을 심는 이유와 닮았습니다.


난 그녀가 Bidemmi의 체리나무를 보고, 그 순간 행복해지기를 바랍니다.










이쯤되면 베라 비 윌리암스라는 사람에 대해서 알고 싶어질 것입니다.







아, 저 옷!
<어 체어 포 마이 마덜>의 그 의자를 닮은 원단!


올해 85살인 그녀는 지금 뉴욕에 살고 있다고 합니다.


첫번째 동화책을 낸 게 48살때라고 해요.

여러 지역에서 다양한 일들을 했고,

남편과 이혼을 한 후에 캐나다로 건너가

동화작가가 되기 위해 헌신했다합니다.

비폭력과 탈핵을 위한 활동을 했으며

빵집을 운영하기도 하고,

대안 커뮤니티를 만들기도 하고,

그 안에 있는 대안학교에서 교사로도 일했다 합니다.


거기까지 알게 되자 순간, 이거다! 하는 느낌이 왔습니다.


사실은 며칠전 내년부터 일하기로 한 대안학교의 학예회에 다녀왔습니다.

갔다와서부터 너무 많은 걱정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언제나 억압된 환경에서 고 퀄리티를 뽑아내는 것이 미덕이라고 훈육받아온 내가

저 정신없이 왔다갔다하는 아이들 사이에서 버텨낼 수 있을까.

내가 과연 그 월급을 받고 살아갈 수 있을까.

반짝이 들어간 트위드 원피스도 사야하고

빨간 부츠도 사야하고

피자 파스타도 먹고 싶고

눈부신 뢰티나 디스플레이도 갖고 싶은데

그런 것들을 안사고 안먹고 참으면서 살아갈 수 있을까.

내게 살게 될 집에 따뜻한 물은 나올까.

방은 안 추울까.

아.. 그리고 화장실은...

난 비위도 약한데..생태 화장실에 적응할 수 있을까..



...고만 물릴까...

가지 말까...



옆에 있던 친구는 그런 나를 보며 한숨만 달고 왔다고 했습니다.

그런데요, 체리와 체리씨를 읽고 나서

베라 비 윌리엄스를 검색해보고 나서

그 한숨이 사라졌습니다.

그래요, 힘이 들겠지요.

그러나 사람은 지 타고난 본성대로 살아야

지 마음이 시키는대로 살아야

50이 넘어도 저렇게 상콤하고 예쁜 동화책을 쓸 수 있습니다.


그녀가 50이 넘은 나이에 가장 활발하게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요.



그러니까 나는 앞으로도 쭉 계속 이렇게 살랍니다.



내가 무엇이 될지는 모릅니다.


그러나 느낍니다.


과정은 목적입니다.


나의 삶은 언제나 그 순간으로 목적입니다.


그냥 매 순간 느껴지는 대로 살겁니다.


결국은 손에 잡히지 않을지도 모를 그 무엇을 위해 복무하지 않을 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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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혜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