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첫날 아침,

오늘도 변함없이

눈이 푹푹 나렸다.

왠지 우리 동네가 훗가이도라도 된 것 같았다.



점심때쯤, 아버지와 실갱이를 했다.

나는 아빠가 들어줄 리 없는 부탁+레퍼토리를 지껄였고

아빠의 당연하고도 단호한 No와 함께 그 언쟁은,

정확히 말해 나의 투정은 끝이 났다.

이번에도 아빠 승!


'됐어요. 알았으니, 그럼 내 짜잘한 부탁 하나만 들어줘요.'


그리하여 아빠는

아주 오랜만에 글자도 잘 안보이는 빛바랜 수첩을 들고

일본에 계신 친척 할아버지에게 전화를 하게 되었다.



우리 가족에게는 일본에 먼 친척이 있다.

나의 친 할아버지의 사촌들이다.

할아버지와 사촌들은 일제시대에 일본으로 갔다.

나고 자란 조선에서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일본으로 갔다고 했다.


일본에서, 일본사람들은 너무 힘들거나 더러워서 하지 않으려하는 일을 했다고 들었다.


해방이 되자, 우리 할아버지는 귀국했고

사촌들은 그 곳에 남았다.

할아버지의 사촌들과 그들의 아들 딸들은 어쩌다 한번씩 한국을 방문했다.

내 평생에 그들이 다녀간 기억이 서 너 번쯤 밖에 없는 걸로 보면

그들은 아마 10년에 한번 꼴로 고국을 다녀간 셈일 게다.


내가 기억하는 가장 근래에 한국을 다녀가신 분은

돌아가신 내 친 할아버지의 사촌인 할아버지였다.


몇년전이었다.

우리집에 할아버지가 오셨고,

10년에 한번씩 오셨던 할아버지의 얼굴을

삼십 몇년밖에 안 산 내가 기억할리 만무했다.


우리집에서 주무신 할아버지는

다음날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내시더니

휴대용 스케치북 같은 곳에 그림을 그리시기 시작했다.


엄마와 나는 신기해서 할아버지 옆에 둘러 앉았다.

할아버지는 분홍 색연필로 나무에 꽃을 그려넣은 다음,

물총처럼 생긴 작은 붓으로 그 위를 문지르셨다.

그러자 색연필의 딱딱한 질감이 물에 스르르 풀리면서

스케치북 위에 순식간에 화사하고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졌다.


보고 있는 엄마와 나는 스테레오로 '와~!'하고 탄성을 질렀다.


우리의 리액션에 기분이 좋아지신 할아버지는

스케치북을 넘겨 다른 그림들을 보여주셨다.

집에 혼자 있을때, 혹은 여행 다니시며 그린 거라고 했다.

그 친근한듯 하면서도 이국적인 풍경들 속에는

꽃과 나무와 호수가 가득했다.

그림들은 소박했지만, 아름다웠다.


엄마와 나는 할아버지의 그림에 감탄했고

'아쿠아쉬'라고 하는, 작은 물통 달린 붓이

스윽하고 색연필 자국 위를 지나갈때 생기는 물결무늬를 신기해했다.




나는 언제인가 일본에 다녀온 친척 아주머니가 하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일본에 있는 친척들의 집을 방문하러 갔는데,

어찌나 높은 곳, 어찌나 깊숙한 골목안에 있던지,

살아도 살아도 그렇게 가난해보일 수 없었다고 했다.


할아버지에게는 아직도 돈을 타러 오는

50이 넘은 가난한 아들이 있다는 얘기도 들었다.




그러나 그날 할아버지가 우리집에 오셨을때

엄마와 내가 보았던 것은

분명코 가난했을 그의 삶의 빛나는 한 자락이었다.

그날의 그는 평온하고 소박하고 아름다워보였다.



할아버지가 다시 일본에 돌아가신 후, 몇달이 흘렀을 때였다.

우리집에 소포가 도착했다고 했다.







할아버지는, 그 날 할아버지의 그림을 보며 감탄하던 엄마와 내가 내 뱉었던

'와! 나도 그림 그리고 싶다.' 란 말을 기억하고 계셨던 것이다.


나는 그때 엄마와 같은 집에 살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저 물감과 색연필과 아쿠아쉬는 엄마의 차지가 되었다.

그리고 나는 한동안 저 소포에 대한 것을 잊고 살았다.


그러다가, 일본 할아버지의 아쿠아쉬를 다시 떠올린 것은

벌써 작년이 되어버린 지난 여름이었다.

당시 스스로의 힐링 갱생 차원에서 주말마다 산에 다니던 나는

어느날 갑자기 저 닮은 듯 하면서도 다른 산의 능선들을 그려보고 싶었다.

아주 오랜만에 그림이 그리고 싶어진 것이다.

그때, 일본 할아버지의 소포가 생각났다.


나는 엄마 집으로 가서, 색년필과 스케치북을 찾았다.


몇년만에 다시 꺼내본 할아버지가 보내주신 물감과 파레트, 붓, 색년필과 아쿠아쉬는

그 제품들의 뒷면에 '다이소'라는 상표를 붙이고 있었다.

그것들은 우리가 학교 다니면서 썼던 국산 신한물감보다 질이 안좋은 것일지도 몰랐다.


그러나 나는 엄마의 차지가 되었던 스케치북을 넘기다가

비싼 독일제 색연필을 한 가득 가진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려내지 못할, 잊을 수 없는 작품을 하나 만났다.







우리 엄마는,

그림을 잘 그린 다거나, 즐겨 그린다거나 라고 할만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 그림을 본 순간,

나는 그녀의 인생이 단 번에 다가오는 느낌을 받았다.


나는 저 그림을 안다.

저 그림 속에는 내가 있다.

나를 업고, 새참 바구니를 머리에 인 채

보라색 삽을 든 아빠를 따라가고 있는 저 여자는

지금의 나보다 훨씬 어리다.


저건 아마,


그녀의,


젊음,


이었을 것이다.



다행인 것은


하늘은 푸르고


나무는 무성하고


들판은 노랗고


아빠는 미소 짓고 있고,


엄마도 그런 것 같다.










나는 궁금해졌다.

할아버지는 요즘, 어떤 그림을 그리고 계실까.

할아버지의 집에는, 어떤 그림이 걸려 있을까.



일본에 가보고 싶었다.

한번도 가본적 없고, 일본어라곤 하나도 모른다.



나는 할아버지와 친하지도 않을 뿐더러,

할아버지가 나를 기억하실지 어떨지도 모른다.


그러나, 할아버지의 집에 가보고 싶었다.

가서, 당신이 보내준 스케치북과 물감으로 그린

엄마의 그림을 보여드리고 싶었다.


그런 것이 삶인 것 같았고, 살아가는 이유인 것 같았다.



그리고 드디어 다음달 나에게 휴가가 생겼다.









새해 첫날 아빠와 다투었던 나는

내가 원하는 어떤 것을 들어주지 않은 아빠에게

쪼그만 부탁 하나를 들어달라고 했다.

몇번 성가시다고 거절하던 아빠는

마침내 오래된 수첩을 꺼내 들었다.


나는 아빠에게, 그래도 아빠가 나보다 일본 할아버지와 더 친하니까

새해 인사겸 일본에 전화를 드려서 안부를 여쭤본 다음

우리 딸이 다음달에 일본 여행을 가려고 하는데

한번 찾아뵈어도 되겠느냐, 어떻게 찾아가면 되겠느냐,를 여쭤봐 달라고 했다.


몇번의 시도끝에 겨우 겨우 통화가 되었다.



아빠는 어색하게 새해 인사를 드렸고

그리고 뭔가 떠듬떠듬하게 대화를 이어 나갔다.

주로 아빠가 간략하게 묻고

할아버지가 서툰 한국어로 설명을 하고 계신 듯 했다.


통화가 끝날때까지 아빠는 할아버지께 나의 여행 계획을 말씀드리지 못했다.


곁에서 듣고 있던 엄마와 나는 그 이유를 바로 짐작할 수 있었다.


병원에 계시다고 했다.

올 여름쯤부터 편찮으셔서 병원에 계시는데

새해 첫날이라 잠깐 아들과 함께 집에 들렀는데

마침 전화를 받은 거라 하셨다.


병원에서는 정확한 병명도 알 수 없고

치료 할 방법도 없다고 했다고 하셨다.

더 자세한 건 일본어로는 설명할 수 있겠는데

한국어로는 설명하지 못하겠다고 하셨다.

기력이 많이 쇠하셔서 말을 주고 받는 것도 원할하지 않은 것 같았다.

아빠는 일본어를 못했고

곁에 있는 할아버지의 아들은 한국어를 못했다.


아빠는 할아버지의 연세가 어떻게 되는지 잘 몰랐다.

한 80에서 90사이 쯤?이라고 짐작할 뿐이었다.


듣고 있던 엄마가 이렇게 말했다.


'노환이실거야. 이제 한국에 못 오시고 돌아가실 수도 있겠다.'




우리 가족의 첫 새해 안부 인사는 그렇게 끝이 났다.


전화를 하기 바란다.


오래 미루고 미루는 전화가 있다면, 전화를 해서 안부를 묻길 바란다.


지금 하지 않는다면, 너무 늦을 수도 있다.








올 여름 내가 그렸던 저 그림에는, 이런 사연이 있다.

할아버지가 다시 보지 못할 지도 모르는, 고국의 산 능선이다.



그래도 나는 일본에 갈 것이다.


할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부산에서 배를 타고 가고 싶다.


일본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면, 우리 가족의 한 세대가 완전히 떠나는 것이다.


한국에 계시던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모두 돌아가셨으니.


그러나 할아버지는 엄마와 나에게 스케치북과 물감을 주셨다.


그건 우리에게 '이렇게 살아보렴'하고 넌지시 찔러 주신 것과 같았다.


그리고 앞으로 가난하게 살게될 우리는 미소를 지으면서 화답할 수 있다.


'할아버지, 오케이^^  알아 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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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혜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