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설 연휴가 끝난 오후, 꿈을 꾸었습니다.

꿈에 중학교때 친구 선영이가 나왔습니다.

난 선영이에게, '선영아, 나 이러이러한 곳에서 일을 하게 되었어. 그런데 너무 걱정이 되어.' 하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선영이는, '그러게. 어떡하니.' 하고 함께 걱정해 주었습니다.

꿈에서 깨었을 때 나는 선영이가 너무 보고 싶었습니다.

그렇지만 선영이는 지금 멀리 있습니다.

한번 선영이가 보고 싶기 시작하자, 그리고 그 친구가 먼 곳에 살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기 시작하자,

나는 살면서 만났던 많은 사람들이 그립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대구에서 살았고 서울에서 살았고 거창에서 살았고 그리고 또 지금은 다른 곳에 살게 되었습니다.

내 삶의 다른 시기에, 다른 지역에서 만났던 얼굴들이 파노라마처럼 떠오르고

나는 그들을 1년도 한번도 만나기 쉽지 않다는 생각에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러자 곧, 내가 가본 지구에서 가장 먼 곳에 있는 방 하나가 떠올랐습니다.







자리나에게 허락을 받지 않고 내 마음대로 그녀의 집 사진을 올린다면, 어쩌면 그녀가 기분이 언짢을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므로 아직 자리나의 집에 초대받지 않은 내 친구인 여러분은 기념 셀카를 찍고 있는 2011년 10월 29일의 내 등 너머로 보이는 그녀의 집 거실을 엿보셔야 하겠습니다.


저는 바닥이 푹신푹신한 그 거실에 들어가서 한쪽 벽면 가득히 걸려있는 오래된 가족 사진들을 본 순간,

'와우, 이건 패밀리 뮤지엄이에요.'하고 말했습니다. 자리나는 내가 2001년 뉴질랜드 오클랜드에서 만났던 인도 출신의 미국인 심리치료사입니다. 그녀는 아마 올해 우리 엄마 나이쯤 되었을 겁니다. 나는 오클랜드에 있는 아시아계 이민자 여성들과 난민들을 지원하는 센터에서 몇달간 자원활동을 했고, 그때 그녀는 그 센터의 상근자였습니다. 10년만에 우리는 다시 만났습니다. 그녀는 내게 'I can't believe you are here'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10년전에 일어난 아주 작은 디테일 하나까지도 모두 기억을 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10년동안 이 여행을 준비했고, 드디어 다시 그녀를 만났습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음이 틀림없었지만 그러나 가슴 아픈 이야기는 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그녀의 집을 둘러보고 정원에서 꽃을 보고 함께 밥을 먹고 산책을 가고 그러고나서 남은 나의 여행 계획을 얘기하고, 그녀와 그녀의 남편은 다시 나를 시내의 게스트하우스로 데려다주었습니다. 자리나는 내게 'Don't make another 10 year'라고 했습니다.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에 다시 들르라는 뜻이었습니다. 다음날 나는 바로 뉴질랜드의 남쪽을 향해서 여행을 떠났고 로토루아를 지나, 웰링턴에서 배를 타고 남섬으로 갔습니다. 나는 남섬에서 꿈에 그러던 프란츠 조셉 빙하에도 가고 마운트 쿡에도 갔습니다. 마운트 쿡에서는 마운트 쿡 릴리가 그려진 엽서를 자리나에게 보냈습니다. 한달 후 뉴질랜드를 떠나던 마지막날, 그들은 내게 케이로드에 있는 인디언 채식 식당에서 밥을 사주었습니다. 나는 다시 오겠다고 했습니다. 한 번 와보니 여기 오는게 그리 어렵지 않게 느껴진다구요.

오클랜드를 떠나던 마지막날 밤, 나는 목적지 없이 도심 순환버스를 탔습니다. 버스의 한 귀퉁이에 앉아 사람들이 하나 둘씩 도도시의 거리거리에서 내리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 밤, 그 버스안에서 나는 그 도시가 나의 일부임을 느꼈습니다.








다시, 자리나의 방 이야기로 돌아가겠습니다.

집에 들어가기전 자리나는 내게 'We lifted our house'라고 했습니다.

저는 처음에 그 말을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집을 들어올렸다니요.

그러나 거실 앞 벽면에 붙은 저 사진을 본 순간 바로 이해가 되었습니다.

자리나의 집은 원래 1층짜리 단독 주택이었는데, 1층의 구조를 그대로 유지하여 2층으로 밀어올리고

새로운 1층을 만들었다는 거였습니다. 집에 찾아오는 손님들이 머무를 수 있도록 새로 생긴 1층에 거실과 침실, 화장실을 새로 만들었다고 했습니다. 그 새로 생긴 1층에 아까 제가 이야기했던 '패밀리 뮤지엄'이 있습니다.





2011년 10월 29일 방문당시, 그 패밀리 뮤지엄은 아직 세팅중이었습니다.

아직 제 자리를 찾지 못한 액자 하나를 살짝 소개합니다. 저 네 장의 흑백사진은 아마도 4~50년에 걸친 세월의 흐름을 담고 있지 싶습니다. 첫 번째 사진 속엔 어린 자리나와 그녀의 형제자매들, 그리고 젊은 부모님이 함께 있습니다. 마지막 사진에서는 그 아이들이 훌쩍 자라서 중년이 되었고, 어머니는 파파 할머니가 되셨습니다. 저 거실의 한쪽 벽은 저런 사진들로 꽉 차 있습니다. 자리나는 사진을 하나 하나 가리키며 이게 언제이고 누구인지 말해줍니다. '이 언니는 자라서 승무원이 되었고, 지금은 미국 엘에이에 살고 있어. 다음주면 그 언니의 아들이 너처럼 뉴질랜드로 여행을 올겨야. 이 동생은 지금 이탈리아에 살고 있어. 이 녀석은 어렸을때 세상을 떠나고 말았지. 우리 아들은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아르헨티나에서 온 여자와 결혼했단다.'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바로 인도로 갈 수가 없었어. 미국 시민권을 가진 내가 바로 인도로 들어가려면 대사관에서 가서 무슨 절차가 필요했는데, 뉴질랜드 미국 대사관은 웰링턴에 있었어. 래리(남편)가 그날 밤새도록 7시간을 운전해서 웰링턴에 갔어. 아침에 비자를 받아 다시 오클랜드로 돌아와 인도로 가는 비행기를 탔어.'


이쯤되면 내가, 떨어져 사는 많은 친구들이 그립기 시작했을때, 왜 이 방이 생각났는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lift된 그녀의 집 2층에는 또 특별한 방이 있습니다.

2층에 올라가자 그녀가 어떤 방을 또 한참 뒤집니다.

그리고 지난 10년간 내가 보냈던 편지와 카드와 소포를 꺼냅니다.

그러니까 그녀는 전 세계에서 그녀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보낸 편지를 모아두는 방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그녀는 내가 보냈는지 기억조차 잊어버린 소포의 색깔도 기억했습니다.

'내가 이런 걸 보냈단 말이죠? 흠.'









집안의 구석구석엔 숨겨진 보물 같은 장소가 있습니다.











멀리엔 바다도 보입니다.






래리가 정원을 손질합니다.

정원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재미있는 것도 없습니다.






이 녀석은 '보틀 브러쉬'라고 불리는 아이입니다. 남국에서 볼 수 있는 식물이지요.

뉴질랜드에서만 자란다는 크리스마스 나무, 즉 포후투카와와 비슷하게 생겼지만 자세히보면 다릅니다.

요즘은 우리나라에서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이 또한 따뜻한 지방에서만 볼 수 있는 식물입니다.

나는 알지요. 이 꽃을. 이 꽃은 내가 태어난 해 기념으로 엄마가 사와서 삼십몇년째 꽃과 열매를 맺고 있는 녀석과 꼭 닮은 나무입니다.







바로 오렌지 나무입니다! 래리의 정원에는 오렌지 나무가 있습니다.

우리엄마의 귤나무는 방안과 비닐하우스에서만 살아야했는데, 래리의 정원에서는 바깥에서 바닷바람을

받으며 쑥쑥 자랍니다. 이 오렌지 나무는 2년에 한번씩 열매를 맺는다고 해요.






이 녀석은 무척 귀한 나무라고 했는데, 이름을 잊어버렸어요.

래리의 정원에는 많이 새들이 찾아옵니다. 래리는 그 녀석들이 언제 날아오고 이름은 무엇인지 어떻게 우는지도 알려주었어요.















정원을 구경한 다음, 산책길에 나섰습니다.






좀만 걸어가면, 앞에 바다가 있어서 시 포쓰 에브뉴 인가 봅니다.










이런 길들을 지나서, 바다에 이릅니다.





멀리 원트리 힐도 보입니다.






이 마을의 많은 사람들은 세계 곳곳에서 온 이민자들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저 의자에 앉아 출렁이는 바닷물을 보며 고향을 그리워했을까요.

언젠가 자리나는, 미국에서 언니가 다녀갔던 날, 언니가 탄 비행기가 날아오르는 걸 다 보고서도

반나절 내내 공항에 앉아 비행기가 뜨는 걸 보았다고 했습니다.






다시 망가레 브릿지, 자리나와 래리 스미스의 저 집에 방문하고 싶습니다.

지금쯤 패밀리 뮤지엄은 어떤 모습일까요. 거기에는 어떤 사진들이 더 걸려있을까요.

작년, 남섬으로 떠나던 내게 자리나는, 또 다른 10년을 만들지 마라고 하며,

앞으로 내가 10년을 더 살지 어떨지도 모르지 않니, 라고 했습니다.


다시 가면 벽의 사진들을 하나 하나 가리키며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어떤 삶을 살았는지, 언니는 누구와 결혼해서 조카를 낳았는지,

자리나가 어렸을때의 봄베이는 어떠하였는지, 누구랑 연애를 하고, 어떤 옷을 좋아했는지,

그런 이야기들을 들려달라고 조르고 싶습니다.


우리는 여행을 합니다. 내 마음을 알아줄 단 한명의 사람, 단 하나의 이야기, 그런걸 찾아서

우리는 아무리 먼 거리라도 주저하지 않습니다. 나는 그리움의 이름으로 그것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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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혜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