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녀온지 3주쯤이 지나간다.

이제야 쪼금 제주가 그립다.

그리고 앞으로 종종 그리워 질 거란 걸 알겠다.

여권이 없어도 갈 수 있다는 거, 비행기표가 케이티엑스 보다 싸다는거, 행운이지 싶다.







게스트 하우스는 혼자온 여행자들로 북적댔다.

20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여자들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나는 천천히 나가겠다고 한껏 여유를 부리며 밍거적거리고 있는데

먼저 짐을 꾸려서 길을 나서는 어떤 객이 한마디 한다.


"제주도에서는, 남자분들은 그래도 좀 괜찮은데,
 여자분들은 조심하셔야 합니다."

조심이라는 그 한 마디에 또 귀를 쫑긋한다.

-왜요?

"...잘못하다간, ....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예? 뭘요?

"...에, 잘못하다간, 여기 주저앉게 됩니다. 그런 경우 여럿 봤습니다."

-아하, 마음을 잃어버린다는 말이군요!





게스트하우스에서 걸어간 해변. 바람이 무척 세서 바다 짠 내가 거의 나지 않았다.




해변의 들국화. 육지의 것과 거의 같은데, 키가 매우 작다.




나중에 제주를 떠날때쯤 알게 되었는데,

이 작고 이쁜 녀석이 제주의 모든 것이자 얼굴이 아니었을까 싶다.





올레 1 코스 진입. 감자꽃을 10월에 보게 되다니. 우리 고향에서는 6월에만 피는데.

올레 1 코스는 아기자기한 돌담으로 둘러싸인 감자밭과 당근밭이 한 가득이다.

미묘하게 다른 그 초록빛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른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여행 내내 어디를 둘러 보아도 논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건 밥을 먹지 못하고 살아왔다는 이야기.




무우밭 돌담에 자라던 나팔꽃.

저것도 육지의 것과 같은 종인 듯 한데, 그 독한 바람을 받아내느라 작고 아담해졌다.




얘도 그래.




밭길을 벗어나 첫번째 오름으로 올라가는 길.

어머나~ 신기한 꽃들이 많다.




이 이쁜 녀석도 땅에 붙어서 자라~




아니, 이 녀석보게!

이것은 빨간 콩깍지!




헉헉거리며 오름을 오르다보니 정상 거의 다 가서 소 방목지가 나온다.

1코스의 특징, 말똥과 소똥이 많다.




오름 정상!! 

선명한 녹색이 당근밭. 다른 것은 감자밭과 무우밭.

산에 있는 것은 억새. 물가에 있는 것은 갈대.




성산일출봉과 우도가 보인다.

저때가 점심무렵이었는데, 날이 깜깜해질때쯤 되어 성산일출봉 아래를 걷고 있었다는.





두번째 오름 가는 길에 만난 녀석.

이러니 남들은 5시간만에 완주한다는데 나는 7시간 걸렸지.




첫번째 오름과 두번째 오름 사이에 있던 무밭.

올레 길을 걷다보면 누구에게나 자기 자신에게만 특별한 길을 만날 수 있을 듯 한데

내게는 저 곳이 그랬다.

도보여행을 마치고 저날 밤에 숙소에 돌아와 누었을 때

자꾸 저곳이 떠오르면서 마치 꿈을 꾸었던 것 같았다.

저곳에서 바라본 햇빛을 받아 반짝이던 무밭과 난대림의 이국적인 초록빛은

말할 수 없이 신비롭고 아름다웠다.






두번째 오름 올라가는 길.

혼자 랩하는 청년이 말똥을 밟으며 나를 앞질러 갔다.

역시 말똥이 많다.

하지만 사람들이 많이 밟아서 닳은 말똥을 보며

그것의 성분이 오로지 풀이었다는 것을 깨닿게 된다.


나무 아래 달린 주황색 리본이 올레길의 방향을 알려주는 표지인데

유심히 보지 않으면 놓칠 수 있어 길을 잃기 십상이다.

저걸 찾아 헤매다 보면 꿈에도 저 리본이 나온다. 드드드





오름 아래 한참 걸어내려가서 만난 마을. 종달리. 리민회관이라는 이름이 인상적이서 한컷.

실제마을은 리민회관의 브루털한 룩보다 훨씬 이쁘다.

실패한 건축물이나 이름때문에 용서됨.




리민회관 옆의 꽃나무.

제주에 도착한 첫날 숙소 주변에서 은은한 꽃향기가 났는데,

사람들에게 물어보자

주변에 꽃같은 건 없다고

내가 그냥 제주에 취해 상상해낸 향기일 거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분명히 그 향기를 맡았노라

내가 향기를 잘 상상해내긴 하지만 분명히 맡았노라 주장했는데

리민회관 옆에서 바로 그 향기의 출처를 찾았다.




아아아, 종달리에서 발견한 보물.

공고는 인터넷 게시판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당.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골목에 저렇게.

저 파란 화살표는 올레 길의 방향을 알려주는 표지.





풍요로운 결실의 계절 가을에, ㅋㅋㅋ

리민 여러분 가정에 늘 행운이 ㅋㅋㅋ

저 앞에서 한참을 킥킥거리고 웃었다.




바람에 날리는 한치 다리들.





감자밭 위에서 풀뜯는 말.

아, 왜케 말이 많을까.




성산포를 배경으로 풀뜯는 말.

아, 또 말이야.




종달리를 지나 성산포로 갈때는 해변 도로를 통과해야하는데,

그 때 만나게 되는 국토?의 모습은 오름에서 보던 것과 마을에서 보던 것과 많이 다르다.

관광지를 통과해야하고, 스산하게 공사중인 곳도 통과해야 한다.

그 곳을 지날때 마음이 많이 추웠다.

얼른 벗어나고픈 길이었다. 어떤 곳은 사람이 아무도 없었고, 조금 무섭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것이 내가 맨얼굴로 만나야할, 두 다리로 걸어내야할, 이 땅의 실제라 느꼈다.


어쩜 그것이 올레길을 걷는 의미일지도 모르겠다.





또 말이야.

유네스코에 등재된 세계문화유산 성산일출봉을 배경으로 풀뜯는 말.




어둠이 깔리고 있어.

저 키작은 들국화 녀석은 제주도 어디를 가든 함께 했지.




무려 일곱시간이 걸려 도착한 일코스 종점. 광치기 해변.

저기가 스탬프를 찍는 곳.

식당 아주머니는 일하시느라 바쁘시고

비닐천막 한귀퉁이에 놓인 스탬프는 자기가 알아서 찍어야 한다.

내 지친 두 다리와 발은 약간 슬펐달까.





숙소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는 길.

광치기 해안의 일주도로.

여섯시 반밖에 안되었지만

제주도는 한밤처럼 깜깜했다.

만약에 저곳에

나보다 먼저 도착해서 40분째 기다리고 있었다는

다른 여행자 분없이 나 혼자 였다면

나는 많이 무서웠을 것이다.

많이 지쳐보였던, 감기에 걸린 것 같았던,

이름을 모르는 그 분이 함께 해준 시간에 감사한다.


여기까지가 내가 유일하게 완주했던 제주 올레 1코스 일곱시간의 기록.

다음날부터 다른 코스는 완주하지 않고 중간에 조금 들어가 걷다 나오기를 반복했는데

그러기 시작하자 끊임없이 길을 잃고 해메야했다.


모든 길에는

길과 그 위를 걷는 사람이 만나서 이루어지는 드라마가 있지만

하나의 길을 완주했을때에야, 그들이 가지는 드라마가 완성되는 것 같다.

지형을 따라 올라가고 내려가는 그 감정의 기복이 있었고,

홀로 견뎌야 했던 스산함이 있었고,

여정의 끝에 몰려오던 아련함이 있었다.

나는 첫날 저 길을 혼자 걸으며

내내 다른 사람들만을 생각했다.

그들이 내게 쏟아놓았던 아픔이나 눈물같은 것들만이 계속 떠올랐다.

그들의 생각으로 꼬박 일곱시간의 걸음을 보내고 난 다음에야

비로소 다음날 나는 나를 생각할 수 있었다.


그 다음날은 나 자신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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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혜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