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이전의 삶

제주의 바람

혜선, 2010. 10. 26. 14:47





도착한 첫날 저녁엔 어디선가 꽃향기가 났다.
누군가는 나만 맡을 수 있는 제주의 향이라고도 했다.

둘째날은 키작은 식물들을 보았다.
분명 육지의 것과 같은 종류의 꽃인데 훨씬 작고 낮았다.
바람 때문인가보다 했다.

지나고 보니 꿈을 꾼게 아니었던가하는
아름다운길도 있었다.

세째날은 지쳤고 피곤했다.
발에는 물집이 잡히고 피멍이 들었다.
계속 길을 잃었다 돌아나오기를 반복했다.

네째날 떠나기 직전에 마지막으로 사계리 해변에 들렀다.
바람 때문에 눈물이 났다.
바람이 너무 쎄서 눈을 뜨고 있기가 어려웠다.
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키작은 들국화들이 세찬 바람에 몸을 맡기고 흔들린다.

나는 제주도가 마냥 좋지만은 않았다.
신산했달까. 어떤 고됨이 느껴지는 땅이었다.
그것의 실체가 저 거센 바람앞에서 키 낮추고 제 몸을 지키던 꽃들이 아니었는가 싶다.

그 작은 녀석들은 강하고 예뻤다.

그것이 아마 검은땅 제주도의 가치이고
제주도가 우리에게 소중한 이유이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