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2012. 10. 08. 월요일 아침 7시 50분.
남원에서 함양으로 가는 버스 창 밖 풍경.
새벽에 자고 점심때 일어나는 생활패턴을 가진 사람이 이런 풍경을 만나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닙니다.
마을에 내려 앉은 가을 안개가 아직 하늘로 올라가기전의 아침 말입니다.
어제밤, 집에가는 버스를 놓쳐서 실상사에서 자고 가게 되었습니다.
예정에 없던 일이었습니다.
나에겐 클렌징 오일도, 폼 클렌징도, 스킨 로션도, 수건도, 다음날 바를 썬크림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냥 세수를 포기했습니다.
처음 들어와보는 절방입니다.
그 방은 아무것도 아니면서 동시에 모든 것인 것 같았습니다.
그 방은 좁았으나, 서글프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습니다.
나는 잠을 청해야했습니다.
그러나 평소 자는 시간이 아니라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불을 껐습니다.
창호지 바른 나무 문의 문살이 선명하게 보였습니다.
나는 곧 기억해내었습니다.
내가 태어나서 열두살이 될때까지 꼭 저렇게 생긴 문을 보면서 할매와 함께 잠들었다는 걸요.
그건 내 인생의 삼분의 일이 넘는 긴 시간이었습니다.
어떻게 그걸 잊고 살았을 수가 있을까요.
잠시, 나는 지우지 못한 메이컵이 발생시킬 피부 트러블에 대한 걱정을 놓아버렸습니다.
그 작은 방은, 곧 검고 커다란 우주가 되었습니다.
하늘 위로는 별이 초롱초롱했을 것입니다.
오래지 않아, 세상의 모든 공간인 그 방에 슬픔이 가득찼습니다.
준비되지 않은 어느날, 당신에게 저 방이 주어진다면,
달과 별이 빛나는 우주와 당신 자신만이 남겨진다면,
저 방의 공기가 슬픔으로 가득 차지 않을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나는 엎치락 뒤치락 했습니다.
네시 쯤에 어렴풋이 깨었습니다.
어느 스님이 아침 예불을 알리는 목소리 때문이었습니다.
스님은 마당을 혼자 돌아다니며 큰 목소리로 염불? 비슷한 것을 했는데
그 젊고 목청좋은 소리가 잠에 덜깨 쩍쩍 갈라지는 것이 매우 인간적이었던지라
나는 자다가 씨~익 미소를 지었습니다.
두번째로 깬 것은 여섯시가 좀 넘어서입니다.
밖에서 사람들이 부지런히 움직이는 소리가 났습니다.
그 소리들 가운데 사람의 목소리로 된 '울력'이라는 단어가 섞여있었습니다.
그 단어는 아직 누워있던 나에게 죄책감이란 것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그러나 챙피함이라는 감정이 내가 바로 일어나 밖으로 나가는 것을 막았습니다.
나는 일어나 앉아 이불을 개고, 첫차시간을 확인하고,
짐을 챙긴다음, 문간에 붙어앉아 기다렸습니다.
울력하는 사람들의 비질 소리가 내게서 멀어지기를.
나는 아주 오랫동안 그 비질 소리를 들었습니다.
소리가 완전히 멀어져 다른 구역으로 이동했다 확신한 순간
나무 문을 열었습니다.
나는 깜짝 놀랐습니다.
내가 오랫동안 문앞에 붙어앉아 귀 귀울였던 비질 소리는,
하늘로 올라간 듯 했습니다.
오늘 아침, 보살님들과 처사님들이 절 마당을 쓸때
바람은 하늘을 쓸었을 겝니다.
마천, 삼정마을에서 나오는 아침 첫 버스에는 자리가 없었습니다.
앞좌석에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꽉 찼고, 뒤에는 교복을 입은 아이들이 있었습니다.
마을을 하나하나 지날때마다 학교가는 아이들이 탔습니다.
어디서 들은 말인지, '영혼을 치유하는 것은 감각이다'라는 말이 생각났습니다.
내 친구는 이 사진을 보고 가마솥이 떠올랐다 했습니다.
그녀는 아마 배도 부르다고 느꼈을지도 모르겠습니다.